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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 도서관의 아침은 언제나 똑같았다. 희뿌연 먼지가 햇살에 부유하고, 고서 특유의 곰팡내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묵직한 서가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창백했지만, 그 빛 속에서 먼지 입자들이 춤추는 모습은 묘하게 평화로웠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낡은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렸다. 땀으로 축축한 등줄기가 셔츠에 달라붙는 느낌이 영 찝찝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서가 구석에 박힌 먼지 쌓인 고서들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이었다. 똑같은 루틴, 똑같은 장소, 똑같은 나. 지루하다면 지루했지만, 동시에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도 있었다.

“야, 너도 매일 똑같지? 지겹지도 않냐?” 어깨 위로 툭, 하고 떨어지는 목소리. 동시에 차가운 공기 방울 같은 게 내 볼을 스쳤다. 고개를 돌리자 마나 정령 ‘반짝이’가 빙글빙글 돌며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투명한 몸뚱아리에 푸른빛을 깜빡이는 녀석은 마탑 도서관의 터줏대감이었다. 녀석은 늘 이 시간에 나타나 내 일상을 비웃거나, 아니면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오늘은 딱 봐도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픽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손가락 끝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녀석은 내 터치를 알아차린 듯 몸을 살랑거렸다.

“지겹다고 하면, 누가 내 밥이라도 차려주냐? 매일 똑같아도, 뭐… 나쁘지 않아. 적어도 조용하잖아. 너처럼 시끄러운 녀석만 없으면.” 내 말에 반짝이는 ‘흥’ 하는 소리를 내더니 저 멀리 흩어져 있는 다른 정령들에게로 빠르게 날아갔다. 푸른빛이 서가 사이로 점점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래, 매일 똑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도서관으로 향하고, 낡은 책들을 정리하고, 가끔 찾아오는 연구 마법사들의 질문에 어물쩍 대답해주고. 때로는 고서들 사이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 마법 재능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마나의 흐름을 읽고 정령들과 교감하는 데는 꽤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을 꿈꿀 필요도 없었다. 나는 전투 마법사도, 연구 마법사도 아닌, 그저 마탑 도서관의 평범한 사서 아르윈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어쩌면 괜찮았다. 적어도 안전했고, 평화로웠으니까. 마탑 밖 세상은 늘 시끄러웠고, 위험한 일들로 가득했다. 왕국의 수도 베르세리아에서는 귀족들의 권력 다툼이 끝없이 이어졌고, 마차 충돌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마법 도시 에테리아는 밤마다 기이한 마력 반응으로 소란스러웠다. 마물들이 도시 외곽을 배회한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런 혼란 속에서 나는 이곳 도서관이라는 세상의 모든 혼란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된 나만의 작은 우주에 있었다. 고요하고, 예측 가능하며, 무엇보다 안전한 곳. 다른 사람들의 영웅담이나 위대한 마법사의 이야기는 먼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낮게 깔린 햇빛이 서가 사이를 파고들었다. 희미한 금빛으로 빛나는 먼지 입자들이 햇살을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손수건으로 책 표지의 먼지를 닦아내며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손때 묻은 낡은 고서는 역사와 지식의 무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페이지마다 배어 있는 퀴퀴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이런 책들을 만지고 있으면, 가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마치 잊혀진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수천 년 전, 이 책을 썼던 마법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글자들을 새겼을까? 그들의 세계는 어땠을까? 이 책들이 품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그런 궁금증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내 사라졌다. 나는 그저 사서일 뿐이었다.

오후가 되자, 도서관은 더욱 고요해졌다. 아침의 햇살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창밖으로는 먹구름이 끼어 어둑어둑해졌다. 눅눅한 공기가 서가 사이를 떠돌았고,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스쳤다. 간간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만이 텅 빈 서가 사이를 울렸다. 나는 가장 오래된 서가, ‘고대 금서’ 구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일반 마법사들에게도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곳이었다. 사서인 나조차도 특별한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마탑 내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구역 중 하나였다. 거대한 마법진이 복도 바닥에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 희미하게 마나의 잔향이 맴돌았다. 공기 자체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봉인 마법이 걸려 있는 책들도 수두룩했고, 가끔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두루마리들이 먼지 속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분위기였다. 서가 깊숙한 곳에서 풍겨오는 알 수 없는 약초 냄새와 퀴퀴한 곰팡내가 섞여 묘한 후각을 자극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법진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곰팡내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성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마법진이 작동하며 내 마나를 은근히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 공간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으스스한 한기가 발끝부터 스며들어왔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 손이 닿지 않는 곳, 거의 아무도 꺼내보지 않는 곳에 어떤 책이 있을지 궁금했다. 매번 같은 책들만 정리하다 보면, 괜히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생기곤 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어떤 특별한 것을 찾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손끝으로 낡은 책등을 더듬었다. 뻑뻑한 나무 선반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 끝으로 먼지층을 헤치며, 무심하게 책등을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책들이 거기 있었다. 이름 모를 마법사들의 기록, 고대 왕국의 역사, 잊혀진 주문의 흔적들. 그러다 문득, 뭉툭한 손끝에 닿은 낯선 감촉.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단단하면서도 차가운 질감이었다. 마치 돌을 만지는 듯한 느낌. 손끝에 착 달라붙는 듯한 기이한 감촉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손끝으로 그 감촉을 확인했다. 확실히 달랐다. 평범한 나무나 가죽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언가 특별한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책을 잡아당겼다. 책은 깊숙이 박혀 있었고, 꽤나 무거웠다. 끙끙거리며 팔에 힘을 주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팔의 근육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마침내 책이 서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알 수 없는 마력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묘한 감각이었다. 마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파동. 내 안의 마나가 미세하게 일렁였다.

“이건… 대체 뭐야?” 책은 여느 고서와는 달리 새까만색 가죽으로 덮여 있었다. 빛을 흡수하는 듯한 짙은 어둠. 표지에는 아무런 문양도, 제목도 없었다. 마치 존재 자체를 숨기려는 듯이. 검은 표면은 매끄러웠지만, 미세한 돌기가 느껴지는 기묘한 질감이었다. 나는 책을 품에 안고 사다리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낡은 나무 사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무도 없는 구석진 탁자에 앉아 책을 펼쳤다. 탁자 위로 먼지가 한 줌 떨어져 내렸다.

첫 장을 넘기자, 거친 종이 위로 낯선 고대 문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 의미 없는 그림 같았지만, 내 안의 마나가 미묘하게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잠잠하던 마나의 흐름이, 이 책 앞에서만 유독 강하게 일렁였다. 심장이 쿵, 하고 가슴을 울렸다. 불안감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이 피어났다.

나는 손끝으로 글자들을 천천히 따라갔다. 내가 아는 언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서로서 오랜 시간 고대 언어를 다뤄왔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이끌렸다. 마치 잠들어 있던 기억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손가락 끝이 문양에 닿을 때마다,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고대 산맥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폐허가 된 천상의 도서관 유적의 모습, 밤하늘의 별자리들이 흐르는 마법진이 그려진 거대한 홀, 그리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봉인의 그림자가 내 의식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이미지들은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실제로 그곳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책에 몰두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도서관은 어둠에 잠겼다. 창밖은 이미 칠흑 같은 밤. 마나 램프를 켜자, 푸른빛이 탁자 위를 환하게 비췄다. 고대 문자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내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듯했다. 글자 하나하나가 빛을 머금고, 어떤 의미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귀로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 안의 깊은 곳에서 그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책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7층 마탑의 봉인에 관한 기록이었다. 단순히 마탑의 특정 구역을 봉인한 것이 아니라, 마탑의 근원적 힘과 역사를 가두는 거대한 주술적 속박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마치 거대한 존재의 숨통을 조여 놓은 것처럼. 특정 존재의 기억을 봉인하고, 나아가 차원의 틈새를 막아두는 역할까지 한다고 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읽고 있는 것이 단순한 고서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것은 마탑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진실이었다.

7층. 마탑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구역. 모두가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그저 오래된 마탑의 흔적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7층은 마탑의 심장부였고, 그 심장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잠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이, 이 책에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그 순간,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뜨거운 감각이었다.

“이게… 진짜라고?”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마탑의 대현자들이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봉인. 그들은 7층을 그저 오래된 폐허로 치부하며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평범한 사서인 내가, 이런 고서 한 권으로 그 비밀을 알게 되다니.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나를 덮쳤다. 손끝이 떨려왔다. 이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거대한 폭풍의 씨앗 같았다. 나의 평범한 일상이 산산조각 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밤은 깊어지고, 도서관은 더욱 침묵했다. 마나 램프의 푸른빛만이 고서를 비출 뿐이었다. 낡은 시계추 소리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7층이 있는 방향을 올려다봤다. 맨 꼭대기 층. 언제나 굳게 닫혀 있던 그곳. 내 눈에는 이제 단순한 벽이 아니라, 거대한 비밀을 간직한, 유혹적인 문으로 보였다. 금기라는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그러나 그 금기는, 동시에 가장 강렬한 유혹이기도 했다.

나는 책을 덮었다. 내 안에 잠자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 같았다. 평생을 평범하게, 규칙에 맞춰 살아왔던 내가, 갑자기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발밑이 흔들리는 것 같은 불안감과 동시에, 미지의 것에 대한 강렬한 갈증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더 이상 이 평범한 삶에 만족할 수 없게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다음 날. 나는 여전히 그 책에 매달려 있었다. 고대 문자를 해독하고, 봉인에 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점심시간에도, 저녁시간에도 나는 탁자에서 떠나지 않았다. 허기를 느낄 새도 없었다. 사서 일이 끝나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나는 마나 램프 불빛 아래서 고서와 씨름했다. 낡은 종이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나의 모든 정신은 오직 7층의 비밀에 집중되어 있었다.

책에는 봉인을 해제하는 방법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은 복잡한 마법진이나 거창한 의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단순하고 원시적인, 어떤 ‘접촉’에 가까웠다. 특정 부위에 마나를 실어 손을 대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너무나 단순해서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수천 년의 지혜가 담긴 봉인이라기에 너무나 허무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나를 더욱 끌어당겼다. 과연 이 단순한 방법이, 마탑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을 열 수 있을까? 의심과 기대가 뒤섞였다.

며칠 밤낮으로 책을 파고들었다. 눈꺼풀은 무거웠고, 손끝은 종이 먼지에 거칠어졌다. 눈은 핏발이 서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부는 푸석거렸고, 입술은 바싹 말라붙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오직 7층의 비밀로 가득했다. ‘금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금지되어 있기에 더욱 탐나는 것.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이 나를 지배했다. 이대로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평범한 나에게 찾아온 유일한 기회 같기도 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이번엔 내가 정한다. 여기, 내가 끝까지 간다.” 작게 중얼거렸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평생을 규칙에 맞춰 살아왔던 내가, 처음으로 금기를 깨뜨리려는 순간이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설렘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피어났다. 이제 내 인생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이 작은 발걸음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늦은 밤, 마탑 전체가 깊은 잠에 빠진 시간이었다. 달빛조차 들지 않는 칠흑 같은 복도는 낯설고도 익숙했다. 창밖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고서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7층으로 향했다.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릴까 봐 조심스럽게, 거의 발소리를 죽인 채 움직였다. 마탑의 어둠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사서로서 수없이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아 있었지만, 이렇게 7층으로 향하는 길은 처음이었다. 매 층을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마나의 흐름이 7층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묵직하고 불안정하게 변해갔다. 공기 중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7층 입구는 마치 거대한 암벽처럼 서 있었다. 다른 층의 입구와는 다르게 문도, 손잡이도 없었다. 그저 매끄럽고 단단한 회색 벽이 끝없이 이어질 뿐이었다. 차가운 돌벽의 질감이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벽의 중앙에는 알아보기 힘든 고대 문양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은 듯 마모되어 있었지만, 그 형태는 여전히 신비로웠다. 손끝으로 만져보면 미세한 굴곡이 느껴지는 정도였다.

나는 고서를 펼쳐 들었다. 책에 그려진 그림과 벽의 문양을 비교했다. 정확히 일치했다. 수천 년 전에 봉인된 고대 지식과 눈앞의 금기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봉인의 핵심은 바로 이 문양에 있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폐부가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찼다. 손바닥에 알 수 없는 마력을 모았다. 내 안의 마나가 미약하게 빛났다. 마치 심장이 강하게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나의 흐름이 손바닥으로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손바닥이 미세하게 뜨거워졌다.

고서에 적힌 대로, 나는 손바닥을 벽의 문양에 가져다 댔다. 차가운 벽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 차가움이 내 피부를 파고드는 듯했다. 내 안의 마나가 흐느적거리며 문양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벽과 내 손바닥이 맞닿아 있을 뿐이었다. 몇 초, 몇 분이 흘렀을까? 정적만이 흐르는 어둠 속에서 시간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나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뭐야… 역시 아니었나?” 실망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헛된 기대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스쳤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나 싶어 손을 떼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그때, 손바닥 아래의 문양에서 아주 미세한 떨림이 시작됐다. 벽 전체가 아주 희미하게 울리는 느낌. 옅은 푸른빛이 문양의 선을 따라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잠들어 있던 생명체가 깨어나는 것처럼, 희미하게 반짝였다. 푸른빛은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그리고 점점 더 규칙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인 간격으로 깜빡였다.

“어…?” 나는 놀라 손을 떼려 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밀려왔다. 미지의 힘에 대한 경외감이 나를 덮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손바닥과 문양 사이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듯, 내 손이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버렸다. 푸른빛은 점점 강렬해졌고, 문양에서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힘에 의해 종잇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가느다란 금이 푸른빛을 따라 번져나갔다. 금이 갈라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눈으로 확연히 그 균열을 볼 수 있었다.

작은 소리와 함께 균열이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마치 유리잔에 금이 가는 것처럼, 벽 전체가 푸른 마력의 선으로 뒤덮였다. 마탑 전체가 웅웅거리는 듯한 진동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전해져 왔다. 복도의 낡은 램프들이 흔들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천장에서 미세한 먼지 가루들이 쏟아져 내렸다. 공기가 진동하며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내 몸 안의 마나가 폭주하듯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봉인된 문이 열리면서 외부의 거대한 마나와 반응하는 것처럼, 내 마나는 격렬하게 요동쳤다. 평소에는 잔잔하던 마나의 흐름이 마치 거대한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귀에서는 굉음이 울렸다. 모든 감각이 마나의 파동에 휩쓸리는 듯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7층의 벽이 산산조각 났다. 푸른 마력의 폭풍이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을 움츠렸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이 내 온몸을 휘감고, 피부를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폐부가 압박당하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고통 속에서 나의 의식이 희미해졌다.

내 몸이 둥실 떠올랐다.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나는 먼지처럼 나부꼈다. 눈을 뜰 수 없었다.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려 했지만, 쏟아지는 빛과 마력의 압력에 불가능했다. 모든 감각이 마력으로 뒤덮였다. 마치 내가 마력 그 자체가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는 듯한 아찔한 감각. 이것은 내가 알던 마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7층의 봉인이 완전히 해제된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마력의 파동은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내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미지의 마력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나의 모든 것을 뒤흔들고 있었다.

마탑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7층에서 뿜어져 나온 압도적인 마력은 마탑의 모든 층을 관통하며 퍼져나갔다. 잠자던 마법사들은 이 심상치 않은 마력의 파동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혼란과 경악에 찬 눈으로 7층 방향을 올려다봤다. 창문이 없는 벽을 뚫고 올라오는 듯한 마력의 압박감에 그들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일부 마법사들은 책상에서 떨어져 넘어졌고, 일부는 마력의 역류에 의해 마법진이 오작동하며 작은 폭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마탑의 가장 깊은 곳에서 깨어난 거대한 힘의 존재를 직감했다. 마탑의 오랜 역사가 흔들리는 듯한 예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거대한 마력의 폭풍 속에서, 의식을 잃어갔다. 내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미지의 마력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고통과 함께, 나는 무의식의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나의 존재는, 거대한 마나의 바다에 휩쓸려 사라지는 작은 조약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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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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