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정문 앞 버스 정류장은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뒤섞여 낯선 소음이 되었다. 매캐한 버스 매연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강하준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깨를 움츠렸다. 큼직한 배낭이 그의 등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마치 세상의 무게라도 짊어진 듯했다. 손에 든 낡은 필름 카메라도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차가운 금속 재질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주변은 온통 활기찬 학생들로 가득했다. 새내기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도 있었고, 제법 여유가 넘치는 선배들도 보였다. 저마다 밝은 표정으로 웃고 떠들었다. 모두들 저마다의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하준은 잠시 멈춰 서서 정면을 응시했다. 거대한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잿빛 콘크리트와 유리창들이 빚어내는 도시의 풍경은 그에게 압도감을 선사했다. 건물마다 붙은 이름표는 왜 그리도 복잡한지. 그는 안내도를 펼쳤지만, 수많은 선과 글자들이 엉켜 보여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바람이 얇은 종이를 펄럭이게 했다.
"음, 그러니까... 인문사회관이 어디였더라."
작게 중얼거렸지만, 주변의 소음에 묻혀버렸다.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와 발걸음 소리에 그의 목소리는 파묻혔다. 어디를 봐도 비슷비슷한 건물들뿐이었다. 마치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마치 자신만 우두커니 서 있는 기분이었다. 괜히 눈치 보였다. 행여 방해가 될까 봐 어깨를 더욱 좁혔다. 낡은 카메라를 꽉 쥐었다. 이 카메라라도 없으면 정말 빈손인 것 같았다. 이것마저 놓으면 세상에 홀로 남겨질 것만 같았다.
"젠장, 벌써부터 꼬이는 건가."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길눈이 어두운 편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나 막막할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늘 같은 길만 다녔다. 새로운 길을 찾는 건 늘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안내도를 들여다봤다.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짚어보았지만, 도무지 인문사회관이라는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지는 듯했다.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리엔테이션에 늦으면 큰일인데. 첫날부터 찍히는 건 정말 피하고 싶었다. 괜한 실수로 낙인찍힐까 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툭, 하고 그의 어깨를 쳤다. 하준은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야! 너 길 잃었냐?"
눈앞에는 운동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가 서 있었다. 시원하게 웃는 얼굴은 딱 봐도 '인싸' 같았다. 햇살 같은 미소에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그의 밝은 에너지가 하준을 향해 쏟아지는 듯했다. 하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그의 손에 들린 안내도를 쓱 훑어보더니 능글맞게 웃었다.
"하긴, 새내기들은 다 그렇지. 나도 처음엔 그랬다고. 인문사회관이면 저쪽이야. 따라와."
남자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앞장섰다. 그의 손길은 묵직하면서도 편안했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하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을 줄이야. 그는 얼떨결에 남자의 뒤를 따랐다. 남자의 걸음은 시원시원했다. 마치 캠퍼스가 자기 집 안마당인 것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땅을 딛는 발소리마저도 당당했다. 하준은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다.
"어... 저기, 감사합니다."
겨우 입을 열었지만, 남자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었다. 그의 뒷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뭘, 같은 새내기끼리. 난 김민준이야. 넌?"
"강하준입니다."
"오, 강하준! 이름 좋네! 난 체육교육과 김민준. 넌 어디 과인데?"
"저는... 국어국문학과요."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 문과! 완전 공부 잘하나 보다? 난 뭐, 대충 들어왔지."
민준은 쾌활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주변의 웅성거림마저 잠재우는 듯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편안함이 묻어났다. 하준은 그의 뒤를 따르면서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이 녀석,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민준은 앞장서서 걸어가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캠퍼스 곳곳을 가리키며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근데 너 그 카메라는 뭐야? 필름 카메라? 레트로 감성인가? 대박인데?"
민준이 하준의 카메라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하준은 얼른 카메라를 품에 안았다.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아, 이거요? 그냥... 취미로 사진 찍는 거 좋아해서요."
"오, 사진 동아리라도 들 건가? 완전 잘 어울리는데? 난 뭐, 운동 동아리나 찾아볼까 생각 중이야. 축구나 농구 같은 거."
민준은 다시 활짝 웃었다. 그의 웃음은 덩달아 기분 좋게 만들었다. 덩치 큰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 같았다. 하준은 민준 덕분에 오리엔테이션 장소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강당 입구는 이미 많은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민준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하준은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강당 안은 열기로 가득했다. 수백 명의 새내기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푹신한 의자 대신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민준은 재빨리 빈자리를 찾아냈다. 둘은 나란히 앉았다. 민준은 곧바로 옆자리 학생들에게 말을 걸며 친화력을 발휘했다. 마치 오래된 친구인 양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하준은 그런 민준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자신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괜히 낯선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조심스러웠다. 시선을 피해 천장의 조명을 응시했다.
강단 위에서는 교수가 대학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준은 멍하니 교수의 말을 들었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수강신청, 학점, 동아리, 장학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괜히 불안해졌다. 이 거대한 대학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때, 앞자리에 앉은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재킷을 단정하게 입은 그녀는 완벽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교수의 말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노트에 빼곡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사각거리는 펜 소리가 조용한 강당에서 유독 또렷하게 들리는 듯했다. 글씨체마저 또박또박 정갈했다.
"저 친구는 누구지? 벌써부터 저렇게 완벽하게 준비하다니."
하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고 온 사람 같았다. 교수가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은 곧게 뻗어 있었다.
"교수님, 방금 말씀하신 부분에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A라는 관점에서 B에 대해 재해석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C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녀의 질문은 명확하고 논리적이었다. 또렷한 발음과 자신감 있는 어조는 하준을 더욱 위축시켰다. 교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의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감탄 섞인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하준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그는 질문은커녕, 교수의 말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와 자신은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은 평범한 돌멩이인데, 그녀는 다이아몬드 같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강당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자리를 뜨거나 화장실로 향했다. 민준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활기찼다.
"저기, 혹시 국어국문학과세요? 필기 완전 대박이던데!"
여학생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또렷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네, 이서연이라고 합니다. 국어국문학과 맞아요."
"와, 반가워요! 전 김민준, 체육교육과예요. 옆에 이 친구는 강하준, 같은 국문과!"
민준은 활기차게 자신과 하준을 소개했다. 서연은 하준을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존재를 인지했다는 듯. 하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손끝이 떨리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강하준입니다."
"이서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딱딱하게 느껴졌다. 첫 만남부터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라니, 하준은 괜히 주눅 들었다. 그녀의 아우라에 눌리는 기분이었다. 민준은 그런 서연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친화력은 어떤 벽도 허물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서연 씨, 아까 질문하는 거 대박이었어요! 완전 논리적! 난 그런 거 생각도 못 하는데."
"그냥 궁금한 점을 질문했을 뿐입니다. 기본적인 내용이었고요."
서연은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 말투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하준은 민준과 서연 사이에서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투명 인간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제일 안전해. 그의 내면 논리는 그렇게 속삭였다. 괜히 나섰다가 실수하면 어쩌지?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민준은 자연스럽게 하준과 서연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유쾌함을 담고 있었다.
"우리 셋이 같이 점심 먹으러 갈까요? 학생회관 식당 완전 맛집이라던데!"
하준은 물론이고 서연도 반대하지 않았다. 서연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학생회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왁자지껄한 소리, 고소하고 매콤한 음식 냄새, 트레이를 든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치 거대한 시장통 같았다. 민준은 능숙하게 빈자리를 찾아냈다. 좁은 공간을 헤치고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능수능란했다.
"야, 여기다! 셋이 앉기 딱 좋네!"
민준은 밝게 웃으며 자리를 안내했다. 하준은 조심스럽게 트레이를 들고 앉았다. 덜그럭거리는 트레이 소리가 괜히 크게 들리는 듯했다. 서연은 깔끔하게 정돈된 테이블에 짐을 놓았다.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 정돈된 습관이 배어 있었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메뉴를 시켰다. 민준은 돈가스, 서연은 샐러드, 하준은 제육덮밥이었다.
"와, 여기 돈가스 진심 쩔어! 완전 바삭하고 맛있네!"
민준은 돈가스를 한입 베어 물며 감탄했다. 그의 입가에는 소스가 묻어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먹는 모습마저도 시원시원했다. 하준은 제육덮밥을 묵묵히 먹었다. 매콤한 양념이 입안을 자극했지만, 왠지 모르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어색함으로 가득했다.
"서연 씨는 샐러드만 드시네요? 건강식인가?" 민준이 서연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네, 점심은 가볍게 먹는 편입니다. 오후 일정을 소화하려면 속이 편해야 해서요."
서연은 포크로 샐러드를 조용히 찍어 먹었다. 아삭거리는 채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먹는 모습마저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한 점의 드레싱도 묻히지 않는 완벽함. 하준은 그저 조용히 밥을 먹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민준과 서연은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하준은 그 대화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마치 자신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하준 씨는 왜 말이 없어요? 밥 맛없어요?" 민준이 하준에게 물었다. 그의 눈빛에 걱정이 스쳤다.
"아, 아니요! 맛있습니다. 그냥... 제가 원래 좀 말이 없어서요."
하준은 당황해서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괜히 민준에게 미안했다. 민준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했지만, 하준의 소심함과 서연의 논리적인 태도 사이에서 대화는 자꾸 끊겼다. 식탁 위에는 숟가락과 포크 부딪히는 소리만 가득했다. 적막이 흐르는 듯했다.
"혹시... 동아리 같은 거 생각해보셨어요?" 하준이 겨우 용기를 내어 서연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게 떨렸다. 서연은 샐러드를 씹던 동작을 멈추고 하준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이 하준에게로 향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학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전공 관련 동아리나 스터디 그룹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아... 그렇군요."
하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라는 서연의 말이 맴돌았다. 자신은 그저 '사진 찍는 거 좋아해서요'라고 말했을 뿐인데. 괜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는 다시 묵묵히 밥을 먹었다. 민준은 그런 하준의 등을 툭툭 쳤다. 위로의 손길이 느껴졌다.
"야, 강하준. 너 너무 기죽지 마! 서연 씨는 원래 좀 진지해서 그래."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준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너무 소심한가? 좀 더 용기를 내야 할 텐데. 새로운 친구들과의 첫 식사인데, 이렇게 어색하게 만들다니. 진짜... 이게 인생이다. 점심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학생회관을 나섰다. 민준은 다음 수업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나중에 또 보자! 하준아, 서연 씨!"
민준은 활기차게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은 금세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하준과 서연만 남았다. 둘 사이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바람이 뺨을 스쳤다. "저는 도서관에 잠시 들렀다 갈 예정입니다. 하준 씨는요?" 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저는... 딱히 갈 데가 없어서요. 그냥 좀 돌아다닐까 생각 중입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업 때 뵙겠습니다."
서연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 도서관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뒷모습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마치 정교하게 짜인 기계 같았다. 하준은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는 어딘가 허전한 기분으로 캠퍼스를 걷기 시작했다. 혼자 걷는 캠퍼스는 아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도 묘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마치 홀로 섬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캠퍼스 밖으로 나오자,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소한 빵 냄새, 달콤한 커피 향, 그리고 알 수 없는 상점들의 냄새가 뒤섞여 새로운 향기를 만들었다. 그중 작은 빵집 하나가 하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새내기 행운 쿠키'라는 팻말이 앙증맞게 걸려 있었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빵집 안으로 들어섰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 하고 울렸다.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따뜻하고 포근한 공기가 그를 감쌌다. 진열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빵과 쿠키가 가득했다. 갓 구워낸 빵들은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하준은 '새내기 행운 쿠키'가 진열된 곳으로 향했다. 동그란 모양의 쿠키 위에는 네잎클로버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설탕으로 섬세하게 장식된 모습이 귀여웠다. 그는 조심스럽게 쿠키 하나를 집어 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전해졌다.
"이게 행운 쿠키구나."
그는 작은 쿠키를 손에 들고 빙글빙글 돌려보았다. 문득 낡은 카메라가 생각났다. 이 순간을 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는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조심스럽게 렌즈를 조절했다. 낡은 카메라의 셔터는 묵직하게 움직였다. 쿠키가 가장 예쁘게 나올 각도를 찾았다. 찰칵! 셔터 소리가 울렸다. 작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소리.
그때, 빵집 문이 열리고 민준과 서연이 들어섰다. 문에 달린 종이 다시 한번 딸랑, 하고 울렸다. 그들의 밝은 표정은 빵집 안을 더욱 환하게 만들었다. "어? 하준아! 여기서 뭐 해?" 민준이 그를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빵집 전체에 울렸다.
하준은 깜짝 놀라 카메라를 황급히 품에 숨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민준은 그의 손에 들린 쿠키를 발견하고 능글맞게 웃었다. 그의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 너 설마 혼자 행운 쿠키 먹고 있었던 거야? 완전 배신인데?"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냥 구경만 하다가..." 하준은 얼굴이 빨개졌다.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해 말을 더듬었다.
"혼자 몰래 사진 찍고 있었잖아. 내가 다 봤어." 민준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서연은 그런 둘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은 맑고 청량했다. 아까의 딱딱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얼음이 녹아내리는 듯한 미소였다. 하준은 그녀의 웃음에 왠지 모르게 안도감을 느꼈다.
"하준 씨도 의외의 면이 있네요. 저런 사진을 찍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서연은 쿠키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호기심이 묻어 있었다. 섬세한 손가락이 쿠키의 네잎클로버를 스쳤다.
"이게 '새내기 행운 쿠키'군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궁금하네요."
"야! 이참에 우리 셋이 하나씩 사 먹자! 행운은 나눠야 제맛이지!" 민준이 신이 나서 외쳤다. 그의 제안에 서연도 긍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세 사람은 각자 행운 쿠키를 하나씩 샀다. 빵집 주인의 인자한 미소와 함께. 하준은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혼자 조용히 사진을 찍으려던 것이 친구들에게 들키다니.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풀린 것 같았다. 작은 쿠키 하나가 그들의 관계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빵집을 나와 각자의 길로 향하며, 하준은 민준과 서연을 다시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조금 더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민준은 여전히 유쾌했고, 서연은 여전히 똑 부러졌지만, 그들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았다. 햇살이 그들의 어깨를 비췄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하준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그의 몸을 감쌌다. 첫날부터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낯선 환경,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어색함. 하지만 그 속에서 작은 웃음과 안도감도 있었다. 그는 오늘 찍은 쿠키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낡은 카메라 액정 속 쿠키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그 사진 한 장이 그의 하루를 요약해주는 듯했다.
앞으로의 대학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을 직감했다. 여전히 소심한 자신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작은 설렘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기대감이었다. 어쩌면 이 낡은 카메라가, 혹은 이 행운 쿠키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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